날이 더워지기 시작했어요
그건 콩국수의 계절이 왔다는 신호이기도 하고요
사실 어릴 땐 콩국수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한없이 의심스러웠어요
저게 진짜 맛있나?
니맛내맛도 없는 허연 콩국물에
하얀 국수를 말아먹는 것이
맛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죠
근데 서른일곱이 된 저는 콩국수 맛집을 검색하고
맛집이 아니라 해도
메뉴판에 콩국수가 쓰여 있으면
오늘 콩국수 한 그릇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콩국수는 계절만 타는 것이 아니라
나이도 타는 메뉴인 듯합니다
제가 다녀온 식당은
파주 운정에 위치한 부부국수라는 식당이에요
이 가게는 오픈한지 얼마 안된
따끈따끈하 신상가게 였어요
부부 국수라는 이름에 끌려가게 된 식당이었어요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하는 것의
마음 쓰임을 겪어본 사람이라 그런지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하는 가게를 보면
한번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근데 상호명이 부부 국수라니
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죠
콩국수를 먹겠다는 생각은 진짜 1도 없었는데
메뉴판에서 콩국수를 보자마자
콩국수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은 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했어요
이런 경우에 보통은 새콤한 비빔국수를 시켜서
음식궁합을 맞추고 나눠먹는 선택을 하거든요
근데 오늘의 선택은 그냥 콩국수였어요
올해 첫 콩국수를 부부 국수에서 개시했네요
메뉴 세 개를 소화시킬 능력이 있었다면
비빔국수 하나를 더 시켰겠지만 낭비죠 낭비
요즘엔 둘이서
메뉴 두 개도 다 못 먹을 때가 있거든요
드디어 주문한 돈가스와 콩국수가 나왔어요
돈가스는 소스를 직접 만드시는듯해요
소스에 잘게 잘린 야채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소스 자체가 굉장히 부드러운 맛이었어요
소스에 덮인 바삭한 돈가스를 슥슥 잘라서
밥과 김치와 함께 한입 크게 먹어줍니다
밋밋한 콩국수 위에
토마토와 오이 고명을 올려주니
알록달록 산뜻한 색감이네요
콩 맛이 진하게 나지는 않지만
진득한 농도가 마음에 들었어요
전 사실 국수보단 콩국물 파거든요
가끔 그냥 콩국물만 사서 마시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콩국수 시켜서 떠먹는 콩국물이
더 맛있게 느껴지더라고요
한 2년 전쯤 처음 콩국수에 입문했어요
그때 고양시 저 구석 동네에
엄청 유명한 콩국수 집이 있다고 해서
열심히 찾아가 봤죠
아주 외진 동네에 있는 가게인데도
손님이 아주 많더라고요
제 입맛에도 너무 맛있는 콩국수였어요
국수 건더기는 별로 먹지도 않고
콩국물만 한 번 더 리필해 먹었는데
그렇게 맛나게 먹고서
아주 급체를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런 고생의 기억이 있는데도
그 집 콩국수가 또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그 콩국수가 정말 맛있긴 했나 봐요
올여름에 다시 한 번가서
제대로 맛을 느껴보고 싶네요
서른 중반이 되니 평생 해결되지 않을 듯했던
콩국수의 의문이 해결되었어요
나도 콩국수의 맛을 느낄 수 있구나 싶었죠
나이를 먹으면 느낄수 있는 맛의 종류가
많아지기라도 하는 걸까요?
무튼 콩국수의 계절이 돌아왔고
저는 콩국수의 나이가 되었으니
올여름에 인생 콩국수를 만나게 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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