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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리뷰

파주 운정 명가 순대국, 머리고기도 맛났던 맛집 탐방 이야기

by JIYA 지야 2020. 5. 16.

남편에게 점심 뭐 먹을까 물었더니

내장탕이나 순대국을 먹고 싶다고 한다

술을 마신건 분명 어제도 아닌 그제였는데

아직도 해장 중인 느낌 뭐지?

맞다 이상하게 3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는

해장도 2박 3일이 걸린다

그래 이번 끼니로 해장 종결하고

다시 태어납시다 남편

 

순댓국집을 떠올려보니

죄다 규모가 큰 프랜차이즈 식당만 떠오른다

시끌벅적 어수선한 분위기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순댓국이 나오는

그런 가게들 말이다

 

오늘은 자그마한 순댓국집을 가고 싶은데

도통 동네에서 본 기억이 없다

진짜 삶이 프랜차이즈 식당에 익숙해졌나 보다

눈에 띄는 곳엔 죄다 익숙한 브랜드들 뿐이니..

어쩔 수 없지.. 이럴 땐 뭐다? 검색이다

찾아보니 동네에 자그마한 순댓국집이 하나 있다

좋다 오늘은 여기로 가보자

파주 운정 명가 순댓국

 

예전엔 밥 먹으러도 커피 마시러도

이 동네에 자주 왔었는데 오늘 정말 오랜만에 왔다

상권의 변화가 무섭게 느껴진다

한 2년 전쯤만 해도

남편은 회식을 늘 이 동네에서 했다

근데 신도시 내에 중심상권이 더 생겨나면서

남편의 회식장소도 우리의 외식장소도

새로운 상권으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신상권에 가면 식당들은 반짝반짝 윤이 나고

처음 보는 간판들로 넘쳐난다

현혹이 제대로 되는 거다

요즘엔 식당도 메뉴도 유행을 엄청 탄다

정말 확 타올랐다가 확 꺼진다 무서울 정도다

소비자로선 이런 유행의 빠름이 반갑고 좋기만 한데

장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조바심이 나고 불안하다

 

내외부적 상황으로

몇 달 만에 외식을 나온 우리 부부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신이 난다

순댓국집으로 이동하는 차 안 라디오에선

아로하가 흘러나오고 기분은 마냥 좋다

 

노래 흥얼거리는 사이에 벌써 도착했다

테이블 대여섯 개의 아주 작은 순댓국집이다

내가 운영하던 튀김집보다 살짝 더 작은 느낌이다

한 12평 정도 되려나? 싶다

오픈한 지 1년 정도 되는 매장인데

아담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입구 쪽에서 안쪽 주방이 반 정도는 보이는데

주방 사이즈도 넉넉하고 정돈된 느낌이 든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얼큰 순댓국 특, 머리고기다

순댓국만 시키긴 아쉬우니까

머리고기도 같이 주문했다

음식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늘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순댓국이니까 후딱 나오겠지?

나왔다

 

 

특을 시켜 그런지 고기가 아주 실하게 들어있다

내장은 들어가지 않고 고기와 순대만 들어가는데

살코기만 들어가는 순댓국도 따로 주문이 가능하다

순댓국은 간이 거의 되어있지 않다

새우젓으로 취향껏 간을 맞추면 된다

국밥이 짠걸 싫어하는데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든다

수육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돌판에 나왔다

오-- 비주얼 군침 도는데?

 

 

오랜만에 외식이긴 한가보다

남편이 사진 찍고 아주 난리가 났다

예전엔 음식 앞에 두고 먹기가 바빴는데

요즘엔 사진 찍고 영상 찍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습관 은근히 좋다

막 허겁지겁 먹는 걸

방지할 수 있고 과식도 좀 준다

음식을 다양하게 즐기는 방법 중 하나라 생각한다

 

'오빠? 우리 적당히 찍고 이제 먹을까?'

오늘따라 유난히 사진을 찍는 남편이다

우리 부부 외식을 너무 쉬긴 했나 보다

 

 

결국 남편이 소주를 시켰다

나는 짠만하라는데 진짜 진지하게 고민된다

대리할까?

해장하러 와서 해장술 먹게 되는 맛이

바로 이런 맛이었군

 

결혼생활을 하면서

하지 마 사지 마 안돼 이런 말을

서로 잘하지 않는 편이다

그냥 웬만하면 어 해봐 응 사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남에게 해를 끼친다거나

가정경제에 파탄을 일으킨다거나

그런 심각성을 띄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마음가짐은 결혼생활에 좀 도움이 된다

취향도 성향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났으니

상대가 하는 게 모두 다 맘에 들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 순간순간 깐깐하게 굴지 말고

그래 하자 그래 해봐 하면 된다

어 마셔 어 시켜 내가 짠해줄게

솔직히 속으론 좀 못마땅했다

'왜 굳이 술을 또 시키고 아이고' 이랬다

나도 그냥 마셔버려? 대리 불러?

이러다가 결국 그냥 짠만하기로 한다

 

 

메뉴 선택 훌륭했고 식당 선택 훌륭했다

순댓국이 딱 가게 분위기를 닮았다

깔끔하고 아담하고 조용한 느낌

사장님이 우리랑 같은 세대인지

싸이월드 BGM 같은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것마저 괜히 마음에 드는 행복한 시간이다

 

부부가 함께 운영을 하는가 보다

(확실치는 않다)

하루 종일 같이 일하시는 건가?

알바는 따로 안 쓰시는 건가?

뭔가 궁금증이 생기지만 입 닫고 먹는데 집중한다

튀김집 할 때 남편이 나와 도와주던 때가 생각났다

결혼하고 싸울 일이 거의 없었던 우리 부부였는데

장사하면서 몇 번 싸웠다

좁은 가게에서 하루 종일 둘이 붙어있으면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뒤틀리고 응어리가 생긴다

풀고 싸우고를 반복하면서 둘 다 조금 지쳤었다

그 지겨운 감정싸움 조차도

추억으로 포장되는 거 보니

나 정말 폐업한 거 맞는구나 싶다

 

순댓국은 국물까지 싹 비웠는데

머리고기가 좀 남았다

싸 달라고 하기 좀 어색한 양이긴 한데

그래도 비닐봉지에라도 담아달라고 말씀드렸다

순댓국집 사장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튀김집 하면서

떡볶이랑 튀김이 아무리 조금 남아도

포장해달라고 하시는 손님이 좋았다

포장을 하는 귀찮음과 포장용기가 낭비되는 것보다

음식물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게

더 마음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음식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억지로 먹지도 않는다

뒀다 나중에 꼭 먹는다

"그러니 사장님 죄송한데 비닐에 살짝 담아주세요"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사장님이 빠르게 식사 준비를 하신다

몇 개월 전까지 후다닥 꾸역꾸역 쑤셔 넣던

나의 가게 밥이 떠올랐다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밥 먹는 시간은 좀 어색한 거 같다

장사할 때 브레이크 타임을 따로 두지 않아서

입에 밥을 넣은 상태에서 손님을 맞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손님도 미안하고 나도 미안하다

밥 그냥 좀 있다 먹을걸 괜히 지금 먹었다 싶고

나의 밥을 하찮게 여겼다

"그까짓 거 그냥 대충 빨리 좀 먹던지 먹지 마라"

그거 진짜 별로인 마음가짐인데

나가 내 자신에게 그랬다

순댓국집 사장님을 보니 그런 내가 생각났다

속으로 조심히 말했다

'천천히 식사 맛있게 하세요 우리도 잘 먹었습니다'

 

다음엔 차 없이 와서

술국에 모둠순대 시켜놓고 소주 한잔 하고 싶다

작고 아담한 가게에서 혼술 해도 좋을 것 같고?

내 가게에서 종일 음식을 파는 삶을 살다가

오랜만에 남의 가게에서 음식을 사 먹으니

기분이 굉장히 묘하다

오늘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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